📑 목차
유초연계교육에서 '전이'는 무엇일까요? 옮겨가는 것? 옮겨가서 잘 지내는 것? 옮겨간 후 발전해가는 것?
유초연계교육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의 전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유초연계교육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광순, 박채형(2017)의 문헌연구는 전이를 인식하는 세 가지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국내 연구가 유치원에서는 '준비' 개념으로, 초등학교에서는 '적응' 개념으로 전이를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 양자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이를 일회성 입학 이벤트로 볼 것인가, 문화 적응 과정으로 볼 것인가, 생활세계의 확대로 볼 것인가에 따라 누리과정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다섯 영역의 활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며, 이는 곧 우리 아이들의 학교 전이 경험의 질을 좌우합니다.

전이를 바라보는 세 가지 렌즈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는 전이 현상을 이해하는 세 가지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각 패러다임은 누리과정의 다른 측면을 강조합니다.
패러다임 1: 문화 적응 과정으로서의 전이
첫 번째 관점은 전이를 유치원 문화에서 초등학교 문화로의 적응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별개의 세계입니다. 유치원은 놀이 중심, 자유로운 일과, 통합적 활동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면 초등학교는 교과 중심, 정해진 시간표, 분절적 학습이 중심입니다.
이 관점에서 유초연계는 유아가 초등학교 문화를 미리 경험하고 익숙해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2022년 이음교육 시범사업에서 가장 많이 실행된 활동인 '초등학교 방문하기'가 바로 이 관점을 반영합니다. 유아들이 초등학교 교실을 둘러보고, 1학년 수업을 참관하며, 초등학생 형님들과 만나는 것은 낯선 문화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줄입니다.
누리과정 사회관계 영역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사회에 관심 갖기'는 유아가 자신이 속한 유치원을 넘어 더 큰 사회(초등학교)에 관심을 갖도록 합니다. '더불어 생활하기'는 새로운 문화적 규칙과 관계 속에서 적응하는 능력을 기릅니다.
패러다임 2: 생활세계의 확대에 따른 관계 및 심리 변화
두 번째 관점은 전이를 유아의 생활세계가 가정과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와 더 넓은 사회로 확장되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발달심리학적 관점으로, 유아의 관계망이 확대되고 심리적 세계가 복잡해지는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초등학교 입학은 단순히 장소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규칙을 만나며 유아의 내면세계가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대, 설렘, 불안, 두려움 등 복잡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양지애, 이정욱(2018)의 교사연수 프로그램이 "유초연계와 관련된 유아의 감정에 공감하는 학습자 중심 교육"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 패러다임을 반영합니다. 유아의 심리적 경험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이 성공적 전이의 핵심입니다.
누리과정 전 영역이 이와 관련됩니다. 신체운동·건강 영역(자신의 몸과 감정 알아차리기), 의사소통 영역(자신의 생각과 느낌 표현하기), 사회관계 영역(나를 알고 존중하기, 타인과 관계 맺기), 예술경험 영역(감정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기), 자연탐구 영역(호기심을 탐구로 확장하기) 모두가 생활세계 확장을 지원합니다.
패러다임 3: 징검다리 놓기로서의 전이
세 번째 관점은 전이를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가장 실천적이고 협력적인 관점입니다. 전이의 책임이 유아나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함께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2년 부산시 '징검다리' 프로그램이 바로 이 메타포를 활용했습니다. 금정유치원과 금정초등학교가 '징검다리'를 주제로 공동 수업과 체험활동을 실시했고, 초등교원의 53.8%가 이를 가장 성공적인 활동으로 꼽았습니다(문무경, 강규돈, 2022). 징검다리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는 연결고리를 상징합니다.
2019 개정 누리과정 자체가 징검다리입니다. 김창복, 이신영(2020)의 연구가 밝혔듯이, 2019 개정 누리과정은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구성체계를 유사하게 만들어 연계성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누리과정의 성격과 추구하는 인간상' 신설, 교사 자율성 보장, 학습자 중심 패러다임은 모두 초등교육과정과의 다리입니다.
준비 vs 적응: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다른 언어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전이를 다른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점입니다.
유치원의 관점: 준비(Preparation)
유치원은 전이를 '준비'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유아가 초등학교에 갈 준비가 되었는가? 무엇을 준비시켜야 하는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중심입니다.
2017년 조혜진, 김수연 교수의 연구에서 유치원 교사들은 기본생활습관, 기초학습능력, 초등학교 방문 등을 주요 준비 활동으로 실행했습니다. 이는 준비 개념에 기반한 접근입니다.
준비 개념의 장점은 사전 예방적이라는 점입니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하여 원활한 전이를 돕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준비는 자칫 일방적이고 하향식이 될 수 있습니다. 유치원이 초등학교의 기준에 맞춰 유아를 '길들이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관점: 적응(Adaptation)
초등학교는 전이를 '적응'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입학한 유아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 적응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중심입니다.
최일선(2020)의 연구는 전국 7개 시도교육청의 입학 초기 적응활동 교재를 분석했습니다. 학교생활적응, 기본생활습관, 친구 및 가족관계, 기초학습능력, 안전교육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적응 개념에 기반한 접근입니다.
적응 개념의 장점은 입학 후 실제 상황에 대응한다는 점입니다. 이론적 준비가 아니라 현실적 어려움을 직접 다룹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적응은 자칫 반응적이고 사후적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대응하는 것입니다.
통합의 필요성: 준비와 적응을 넘어 성장으로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는 준비와 적응의 개념 구분과 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이는 준비도 적응도 아닌, 지속적 성장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호주의 Sue Dockett과 Bob Perry 교수의 20년 종단연구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성공적 전이의 4대 구성요소로 기회(Opportunities), 기대(Expectations), 열망(Aspirations), 권리(Entitlements)를 제시하며, 전이를 권리 기반 접근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아동이 성공적으로 전이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준비나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 보장의 문제입니다.
일회성 이벤트 vs 지속적 과정: 패러다임의 전환
정광순, 박채형(2017) 연구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전이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회성 이벤트로서의 전이 (×)
많은 사람들이 전이를 입학식 날로 생각합니다. 2월까지는 유치원생, 3월부터는 초등학생. 입학식이라는 하루의 이벤트로 전이가 완성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인식은 2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입학식을 치르고, 3월 한 달 동안 적응 활동을 하면 끝이라는 접근을 낳습니다. 하지만 실제 아동의 경험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속적 과정으로서의 전이 (○)
전이는 유치원 연장반(만 5세) 1년 내내,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됩니다. 유아는 형님이 초등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초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고, 상상하며 심리적 준비를 합니다.
입학 후에도 전이는 계속됩니다. 2025년 교육부가 늘봄학교를 초등 2학년까지 확대한 것은, 전이가 1학년 한 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반영합니다. 초등 저학년 내내 유치원에서 시작된 배움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발전해야 합니다.
한국아동패널 종단연구(2019)는 교사의 유초연계 중요성 인식이 학습자중심 수업활동을 통해 아동의 학교적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이완정, 김미나, 2019). 이는 전이가 한순간의 적응이 아니라, 교사의 지속적인 지원과 유아의 점진적 성장이 누적된 결과임을 의미합니다.
양방향적 이해와 협력: 유치원만의 책임이 아니다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양방향적 이해와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전이의 책임은 유치원에만 있지 않습니다.
유치원의 책임: 출발선 만들기
유치원은 유아가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출발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누리과정 5개 영역을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 자주적 태도, 창의적 사고, 풍부한 감성, 더불어 사는 능력을 기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초등학교에 맞춰 유아를 '훈련'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이 '유아·놀이 중심'을 강조한 것은, 유아기의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초등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초등학교의 책임: 도착선 준비하기
초등학교는 유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Arnold 등(2008)의 국제 연구가 강조했듯이, 학교의 아동 준비도가 중요합니다. 초등학교가 유치원 문화를 이해하고, 놀이를 활용한 수업을 운영하며, 유아의 발달 특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2022년 이음교육 시범사업에서 초등교원의 76.9%가 유초 교육과정에 대한 상호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한 것은(문무경, 강규돈, 2022), 양방향 협력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줍니다.
문화적·사회적 맥락: 모든 아이는 다르다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는 문화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한 전이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전이 경험은 아동마다 다릅니다.
도시와 농촌, 국공립과 사립, 일반가정과 다문화·저소득가정 아동의 전이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2022년 이음교육 시범사업에서 특수아, 다문화가정 아동에게도 긍정적 효과가 확인되었지만, 이들에게는 맞춤형 지원이 필요합니다.
제3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2023-2027)이 '모든 유아에게 격차 없는 출발선 보장'을 첫 번째 목표로 설정한 것은, 맥락을 고려한 차별화된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실천을 위한 질문들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가 제공하는 이론적 틀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질문들입니다.
교사에게:
- 나는 전이를 일회성 이벤트로 보는가, 지속적 과정으로 보는가?
- 준비 중심 접근과 적응 중심 접근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가?
- 유아의 감정과 심리적 경험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가?
- 초등학교 교사와 양방향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가?
부모에게:
- 초등학교 준비를 학습 준비로만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 우리 아이의 생활세계 확장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 아이가 전이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을 함께 나누고 있는가?
정책입안자에게:
- 유치원과 초등학교 간 양방향 협력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가?
- 전이를 지속적 과정으로 지원하는 정책(예: 늘봄학교)이 있는가?
- 모든 아동의 맥락을 고려한 차별화된 지원 체계가 있는가?
마치며: 이론이 실천을 바꾼다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는 추상적인 이론 논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은 실천의 기반입니다. 전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실천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전이를 일회성 이벤트로 보면, 2월 한 달의 준비와 3월 한 달의 적응 활동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이를 지속적 과정으로 보면, 1년 내내, 아니 그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함을 알게 됩니다.
전이를 준비로만 보면, 유치원이 일방적으로 초등학교에 맞춰 유아를 '훈련'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이를 양방향 협력으로 보면, 초등학교도 유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2025년 현재 우리는 더 나은 이론적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이해를 실천으로 옮길 차례입니다. 모든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식으로, 안전하게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징검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참고문헌
- 정광순, 박채형(2017). '초등학교로의 전이'를 인식하는 관점 탐색. 통합교육과정연구, 11(4), 121-143.
- 문무경, 강규돈(2022). 유·초 연계교육 운영 모델 개발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보고 2022-09.
- 김창복, 이신영(2020). 2019 개정 누리과정의 주요 개정 내용과 초등학교 교육과정과의 연계 고찰. 한국초등교육, 31(1), 245-265.
- 양지애, 이정욱(2018). 유치원 교사를 위한 유초연계교육 교사연수 프로그램 개발. 유아교육학논집, 22(3), 14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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