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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초연계교육에 대한 호주의 접근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호주에서 학교 전이 연구 프로그램은 2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유초연계교육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Sue Dockett과 Bob Perry 교수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수행한 'Starting School Research Project'는 아동, 가족, 교육자라는 다중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학교 전이를 종단 연구했으며, 전이가 아동 개인만이 아니라 전체 가족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학적 현상임을 밝혀냈습니다.
이 연구가 강조하는 비학업적 기술의 중요성, 가족-학교 파트너십, 아동의 목소리와 주체성, 권리 기반 접근은 누리과정의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다섯 영역 모두와 긴밀히 연결되며, 2022년 한국 이음교육 시범사업의 다중 이해관계자 접근을 국제적으로 검증해줍니다.

왜 호주 연구가 중요한가: 20년의 축적된 지혜
많은 유초연계 연구가 1~2년의 단기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반면, Dockett과 Perry의 연구는 2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2007년 'Transitions to School: Perceptions, Expectations, Experiences', 2013년 'Trends and Tensions', 2014년 'Transitions to School - International Research, Policy and Practice' 등 다수의 주요 출판물을 통해 이론적 틀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장기 연구는 단순히 데이터를 축적한 것이 아닙니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국제 연구의 이론적 변화를 메타분석하고,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의 실천을 비교하며, 전이 연구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은 한국의 유초연계 정책에 견고한 국제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생태학적 관점: 아동만의 전이가 아니다
Dockett과 Perry의 연구가 가져온 가장 큰 패러다임 전환은 생태학적 관점입니다. 전이는 유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학적 현상입니다.
가족 시스템 전체의 전이
초등학교 입학은 유아만의 이벤트가 아닙니다. 부모도 함께 전이를 경험합니다. 유치원 학부모에서 초등학교 학부모로의 역할 전환, 새로운 학교 문화에 대한 적응, 자녀의 학습 지원 방식 변화 등을 겪습니다.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2022년 한국 이음교육 시범사업에서 학부모 만족도가 5점 만점에 평균 3.84~4.21점으로 높게 나타난 것은(문무경, 강규돈, 2022), 학부모가 전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학부모 지원이 성공적 전이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호주 연구는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합니다.
누리과정 사회관계 영역의 '나를 알고 존중하기'와 '더불어 생활하기'는 가족 관계를 포함합니다. 유아는 가족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성장하며, 초등학교 전이도 가족과 함께 경험합니다.
다중 맥락의 상호작용
생태학적 관점은 가정-학교-지역사회의 다중 맥락이 상호작용한다고 봅니다. 유아는 여러 환경을 오가며 살아가고, 각 환경에서의 경험이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김호, 장혜진(2022)의 해외 사례 분석도 캐나다가 교육과정뿐 아니라 물리적 공간까지 연결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같은 건물을 공유하거나, 놀이터를 함께 사용하는 등 물리적 환경도 전이를 지원하는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2000-2015년 이론적 변화: 패러다임의 대전환
Dockett과 Perry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국제 학교 전이 연구의 이론적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이 메타분석이 발견한 변화는 놀랍습니다.
발달적/준비도 관점에서 생태학적·사회문화적 관점으로
2000년대 초반: 전이 연구는 주로 '학교 준비도(school readiness)'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유아가 학교에 갈 준비가 되었는가? 인지적, 신체적, 사회정서적으로 발달했는가? 이러한 질문이 중심이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연구의 초점이 '학교의 아동 준비도(school readiness for children)'로 이동했습니다. 유아만 준비할 것이 아니라, 학교도 아동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rnold 등(2008)의 국제 연구도 준비도는 다차원적이며, 아동, 학교, 가족, 지역사회 모두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정광순, 박채형(2017)의 연구가 강조한 양방향적 협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한국도 2022년 이음교육 시범사업을 통해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합류했습니다.
비판적 관점: 사회정의의 등장
2010년대 중반부터 사회정의(social justice) 관점이 부상했습니다. 모든 아동이 공평한 전이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는가? 소외계층 아동의 전이는 어떻게 지원되는가? 이러한 비판적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2025년 한국 교육부가 '출발선 평등'을 강조하고, 제3차 유아교육발전 기본계획(2023-2027)이 '모든 유아에게 격차 없는 출발선 보장'을 첫 번째 목표로 설정한 것은, 이러한 국제적 사회정의 담론과 연결됩니다.
연속성(Continuity): 중심 개념으로의 부상
2000-2015년 기간 동안 '연속성(continuity)'이 전이 연구의 중심 개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전이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어야 하며, 유아기부터 초등까지 배움과 성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9 개정 누리과정이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구성체계를 유사하게 만든 것도(김창복, 이신영, 2020), 연속성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성공적 전이의 4대 구성요소: OECD를 넘어서
Dockett과 Perry는 성공적 전이를 위한 4대 구성요소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OECD(2017)의 권고를 구체화한 것입니다.
1. 기회(Opportunities): 성공 경험 제공
유아에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작은 성공들이 쌓여 자신감이 되고, 자신감은 새로운 도전(초등학교 입학)에 대한 용기가 됩니다.
누리과정 자연탐구 영역의 '탐구과정 즐기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궁금한 것을 관찰하고, 예측하고, 실험해보는 과정에서 유아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습니다.
2. 기대(Expectations): 명확하고 적절한 기대
유아, 가족, 교사 모두 전이에 대한 명확하고 적절한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도, 지나치게 낮은 기대도 문제입니다.
2017년 조혜진, 김수연 교수의 연구에서 학부모의 학습지도 요구가 교사의 어려움으로 나타난 것은, 기대의 불일치를 보여줍니다. 학부모는 선행학습을 기대하고, 교사는 놀이 중심 교육을 지향하는 간극입니다. 명확한 의사소통을 통해 기대를 조율해야 합니다.
3. 열망(Aspirations): 높지만 달성 가능한 목표
모든 아동이 초등학교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높은 열망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달성 가능해야 합니다. 비현실적인 열망은 좌절을 낳고, 너무 낮은 열망은 잠재력을 제한합니다.
누리과정의 추구하는 인간상(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감성이 풍부한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은 높지만 달성 가능한 열망의 좋은 예입니다.
4. 권리(Entitlements): 권리 기반 교육 접근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공적 전이는 선택이 아니라 모든 아동의 권리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는 성공적인 학교 전이를 포함합니다.
권리 기반 접근은 "유아가 준비되지 않아서 적응에 실패했다"는 개인 책임론을 거부합니다. 대신 "우리(학교, 가족, 사회)가 유아를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다"는 집단 책임론을 채택합니다. 이는 2025년 한국 교육부의 '출발선 평등' 철학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비학업적 기술: 누리과정이 강조하는 바로 그것
Dockett과 Perry의 연구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비학업적 기술이 학업적 준비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비학업적 기술이란?
- 공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
- 자기조절: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
- 사회적 기술: 친구를 사귀고, 갈등을 해결하며, 협력하는 능력
- 회복탄력성: 어려움을 겪어도 다시 일어서는 능력
- 호기심과 동기: 배우고 싶어하는 내적 동기
이러한 기술들은 누리과정 사회관계 영역의 핵심입니다. '나를 알고 존중하기', '더불어 생활하기'는 자기조절, 공감, 사회적 기술을 기릅니다.
한글보다 중요한 것
많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Dockett과 Perry의 연구는 반대 결과를 보여줍니다. 한글을 미리 익힌 아동과 그렇지 않은 아동의 장기적 학업성취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아동이 학교 적응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22년 이음교육 시범사업에서 초등교원의 77.0%가 유아들이 초등학교에 잘 적응할 것으로 기대한 이유는(문무경, 강규돈, 2022), 이음교육이 학습 준비가 아닌 사회정서적 준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가족-학교 파트너십: 성공의 열쇠
Dockett과 Perry는 가족-학교 파트너십이 성공적 전이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파트너십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 상호 존중과 공동 책임을 의미합니다.
효과적인 파트너십의 특징
- 양방향 소통: 학교가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합니다.
- 문화적 반응성: 다양한 가족 배경을 존중하고 이해합니다.
- 실질적 참여: 가족이 교육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 지속성: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합니다.
2022년 이음교육 시범사업에서 학부모 활동이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입니다. 하지만 2017년 연구에서 학부모 교육이 가장 미진한 활동으로 지적되었듯이(조혜진, 김수연, 2017), 한국은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습니다.
아동의 목소리와 주체성: 가장 중요한 관점
Dockett과 Perry 연구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아동의 목소리와 주체성을 중심에 둔 것입니다. 전이 연구의 대부분은 교사나 부모의 관점을 다룹니다. 하지만 정작 전이를 경험하는 당사자인 아동의 목소리는 소외되어 왔습니다.
아동은 무엇을 원하는가?
연구팀은 수백 명의 아동을 인터뷰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무엇이 기대되니?", "무엇이 걱정되니?" 아동들의 대답은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기대한 것은 학습이 아니라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걱정한 것은 시험이 아니라 "혼자 화장실을 찾을 수 있을까"였습니다.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이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누리과정 의사소통 영역의 '듣기와 말하기'는 아동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릅니다. 아동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유초연계의 출발점입니다.
한국 유초연계에 주는 시사점
Dockett과 Perry의 20년 연구는 한국에 구체적인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한국의 이음교육 모델은 국제적으로 타당합니다. 2022년 시범사업의 다중 이해관계자 접근(교사, 학부모, 아동)은 호주 연구의 생태학적 관점과 일치합니다.
둘째, 비학업적 기술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선행학습 압력을 줄이고, 누리과정 사회관계 영역을 더욱 충실히 실행해야 합니다.
셋째, 가족-학교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합니다. 학부모 교육을 일회성 설명회에서 지속적인 파트너십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넷째, 아동의 목소리를 적극 경청해야 합니다. 아동 인터뷰, 아동 주도 활동 계획 등을 통해 아동을 전이 과정의 주체로 세워야 합니다.
마치며: 20년 연구가 주는 확신
Dockett과 Perry의 20년 연구는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성공적인 학교 전이는 운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생태학적 접근, 비학업적 기술 강화, 가족-학교 파트너십, 아동 주체성 존중이라는 명확한 원칙을 따르면, 모든 아동이 행복하게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유초연계 정책은 이미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2019 개정 누리과정, 2022년 이음교육 시범사업, 2023년 제3차 기본계획, 2025년 출발선 평등 정책 모두 국제 연구의 근거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현장에서 충실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20년의 축적된 지혜가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 길을 따라, 모든 아이가 권리로서 성공적인 학교 전이를 누리는 그날까지, 우리는 함께 걸어갑니다.
참고문헌
- Dockett, S., & Perry, B. (2007). Transitions to School: Perceptions, Expectations, Experiences. UNSW Press.
- Dockett, S., & Perry, B. (2013). Trends and Tensions: Australian and International Research About Starting School. International Journal of Early Years Education, 21(2-3), 163-177.
- Dockett, S., & Perry, B. (Eds.). (2014). Transitions to School - International Research, Policy and Practice. Springer.
- 문무경, 강규돈(2022). 유·초 연계교육 운영 모델 개발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보고 2022-09.
- Arnold, C., Bartlett, K., Gowani, S., & Shallwani, S. (2008). Transition to School: Reflections on Readiness. Journal of Developmental Processes, 3(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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